부부문제

부부문제

사랑하는 사람이 미워지는 밤에는
                                      
                                          도종환

사랑하는 사람이
미워지는 밤에는 몹시도 괴로웠다
어깨 위에 별들이 뜨고
그 별이 다 질 때까지 마음이 아팠다

사랑하는 사람이 멀게만 느껴지는 날에는
내가 그에게 처음 했던 말들을 생각했다
내가 그와 끝까지 함께하리라 마음먹던 밤
돌아오면서 발걸음마다 심었던 맹세들을 떠올렸다
그 날의 내 기도를 들어준 별들과 저녁하늘을 생각했다

사랑하는 사람이 미워지는 밤에는
사랑도 다 모르면서 미움을 더 아는듯이
쏟아버린 내 마음이 어리석어 괴로웠다


자유와 사랑의 철학자라고 불리는 강신주씨는 사랑이라고 하는 것은 상대방을 온전한 주인공으로 만들어주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정말 그런 것 같습니다. 우리가 그토록 누군가와 사랑을 하고 싶은 이유도 사랑이 주는 그런 매혹의 힘이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지금은 서로 남남 처럼 지내는 부부도 한때는 서로를 주인공으로 만들어줬던 시절이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그런 시절도 없이 조건만 보고 결혼 하신 부부라면 문제가 더 심각해지지만요) 그 시절 만큼은 세상의 모든 것들이 조연의 자리로 물러나고 상대방만이 주연의 자리, 주인공의 자리에 위치하게 됩니다. 이 사람을 위해 내 목숨까지 바칠 수 있다라는 생각이 드는게 사랑이지요. 낙랑공주는 사랑 때문에 국가를 버렸고, 로미오와 줄리엣도 사랑때문에 가족을 등졌습니다. 그 만큼은 사랑은 강력하고, 오로지 상대방에 집중하고, 상대방을 주인공으로 만들어 주는 힘을 지닌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겁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고 모든 것이 바뀌지요. 어느 덧, 내가 사랑하던 부인이, 남편이 주인공의 자리에서 밀려나게 됩니다. 이제 주인공 자리를 아이가 대체하기도 하고, 상대방의 부모가 차지하기도 하기도 합니다. 돈이 그 자리를 차지해서 우리를 비참하게 만들기도 하고, 때로는 종교가 갑자기 주연으로 등장해서 남편이나 아내가 조연으로 밀려나 버리지요.

사랑으로 묶였던 서로가 서로를 주인공을 만들어줬기에 행복했던 부부의 관계는 잦은 말다툼과 힘겨루기로 위태로워 집니다. 적잖은 부부들은 어느 정도 선에서 적당히 타협하며 살아가게 되지만 어떤 경우에는 서로에게 주는 상처들이 너무 깊어져서 서로에 대한 원망이 쌓여가고, 말만 하면 서로를 공격하게 되는 관계로 발전하기도 합니다. 너무 서로에 대한 상처가 커지게 되면 차라리 말을 하지 말자는 쪽으로 방향을 선회하여 체념해 버리고, 서로에게 무관심해지는 단계까지 이르게 되지요.

이런 정도에 까지 이르게 되면 부부의 대화는 거의 대화가 아닌 서로에 대한 비난과 원망으로 채워지게 됩니다. 말을 하면 할수록 상처를 받게 되는 상태, 부정의 감정만이 서로에게 전달되는 상태가 되는 것이지요. 단순히 외부의 요인만이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각자가 지니고 있는 부부 개인의 성격적인 문제들, 자생이 안된 각각의 내적 문제가 두사람의 관계를 회복시키는데 걸림돌로 작용하게 됩니다. 이로인해 다시 화해를 하려해도 쉽지 않게 되죠.

이 지점에서 부부 상담이 이뤄진다면 그것은 아마도 서로에게 감춰진 바로 처음 만났을 때의 그 마음, 서로가 서로를 주인공으로 만들어줬던 그 행복했던 시절의 마음을 되찾아가는 과정일 것입니다. 부부가 서로 상처주는 말 이면에는 제발 나를 다시 당신의 주인공으로 만들어줘 하는 간절한 외침이 들어있습니다. 표면적인 말들만 오고가게 되면 서로의 말꼬리만 잡으면서 서로를 공격하다가 지쳐버리게 됩니다. 그 말들 이면에 감춰진 서로에 대한 사랑을 다시 찾아보고, 왜 서로에 대한 사랑을 회복할수 없었는지, 그것을 방해했던 부부 각각의 내면문제를 파악해나가는 것이 부부상담일 겁니다.

물론 무조건 해피엔딩만 있는 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정말로 서로가 서로에게 부적합한 존재라는 것을 인식한다면 서로의 길을 축원하며 각자의 길을 가는 것도 어른으로서의 자세라고 생각합니다.